또 회사를 하나 더 그만뒀다.
2025년 추석이 끝나고 또 다른 회사를 하나 그만뒀다. 2024년 다시 현업에 복귀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점 중 하나는 대단한 기술력을 필요로하는 서비스가 아닐 경우에 개발을 얼마나 잘하느냐는 대부분, 특히 스타트업씬의 경우에는 내가 다니는 회사의 성공이나 하는 일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작은 작업이란 사실이다. 많은 스타트업의 사장님 혹은 CEO의 역할을 하는 분들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사업의 첫 삽을 푸는 것, 그리고 그 이후에 밀고 나가면서 자본을 융통하고 사람을 모으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 평생 갖추기 힘든 소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개발, 실수,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사업의 방향에서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부분에 답답함을 느끼고 이 때문에 사내에서 윗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들이 나는 잦은 편이어왔다.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원칙은 지키려고 내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야 그것 하나라도 간신히 이뤄내고는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회사를 그만 둔 이유를 압축해서 이야기하자면 물건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가를 신경쓰기보다 어떻게하면 쉽고 빠르게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에만 모든 힘을 쏟은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것이 그러하듯 내게 쉬운 일이라면 남에게도 쉬운 일이고, 내가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들 역시도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렇게 얻어낸 성취물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기 때문에 어떻게하면 남들은 하려하지 않는 귀찮고 시간이 오래걸리는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내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원칙 중 하나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다보면 ‘결국 너는 사장이 되거나 팀장이 돼서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할 권한이 주어져야 만족할 거고, 그때 가서 네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얼마 없단 것을 깨달을 거다.’와 같은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전까지 나는 스스로를 뼛속까지 엔지니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의 경험들을 겪으면서 나는 그정도로 뼛속까지 엔지니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새로운 기술을 실험해보고 공부하고하는 일들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경험이 무의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쓰는 사람들이 만족하고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물건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아무래도 워낙에 짧은 기간들로 회사들을 이직한 이력이 화려하고, 전에 본 면접 중 하나에서는 나의 이런 성향을 ‘그렇게까지 기술적 역량이 뛰어난 것 같지는 않은데 주니어 치고는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다.’는 피드백을 통해 불합격을 받기도 했다. 나에 대한 정확한 평가라고 생각하고, 아직 밥먹고 살만하면 이를 딱히 고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아예 주변 분들이 추천해주시는 대로 이 참에 프리랜서를 한 번 목표로 삼아볼까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재취업을 위해 서류를 집어넣는 것들은 죄다 떨어지고 있었고 개발 역량이 필요한지 자체에 대해 의문스러운 이 시점에 별로 선호하지도 않는 자바 등을 공부하면서 각종 코딩테스트, 과제, 면접들을 뚫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도피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원티드라는 채용포탈에서 한 회사로부터 면접 제안이 왔다. 솔직히, 인사 담당자가 추천리스트에 뜨는 사람들 목록을 대충 확인하고 벌크로 전송하는 과정에서 잘 못 보낸 요청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포지션: 테크리드.
딱히 뭘 하려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어 시간도 남았기에, ‘그래 뭐 이번 면접 보고 2025년을 마무리하면 되겠다. 면접을 보고 나면 나름대로 기분 환기도 되고 다시 뭘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겠지.’라는 생각에 수락을 누르고 다시 스트리트 파이터6를 플레이하며 아 진짜 플마단 달기 한번 드럽게 힘드네 이 망겜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면접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