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마스터

계기

제 첫 마스터 캐릭터는 고우키였습니다. 모던으로 캐릭터도 약 10개 넘게 플레이했고 골드, 플레, 다이아 정도들을 찍어봤고 모던 고우키가 안 좋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들었지만 이에 대해 크게 불만 갖지 않았습니다. 마스터에 도착해서 1300 ~ 1400 점을 헤메기 시작하기 전까지요.

이 게임의 모던은 분명 클래식에 비해 강한 강점이 있고, 그것은 클래식으로 플레이하는 사람과 비교해서 다른 문법으로 게임을 이길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를 불쾌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쉽게는 모던 상대로는 좋은 대공기가 있을 경우 점프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느껴질 정도로 부담스럽고, 번아웃이 되더라도 임팩트로 스턴을 노리기 힘든 것이 가장 기본적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모던은 원래는 최상위 유저들이나 할 법한 어려운 리액션을 비교적 낮은 티어에서도 간단한 조작을 통해 얻은 어마어마한 반응 속도를 통해 사용하고 게임을 리드하는 플레이를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상대의 캔슬 러시를 무적기로 끊는다거나, 돌진기를 승룡으로 끊는다거나, 장풍을 무적기로 뚫는 등의 이야기입니다.

모던이 가지는 강점은 여기에 더해 소위 의식의 분배라고 하는 부분에 있습니다. 모던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툴의 갯수가 적고 발동이 용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응을 하기 위해서 해당 플레이를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놓는 의식의 분배를 적게 해도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제가 모던을 할 때는 사실 상대의 점프를 크게 의식하고 쳐본적이 없습니다. 떴네?하고 눌러도 충분히 반응이 되니까요. 물론 엄청난 훈련 또는 재능으로 인한 반응이 있다면 클래식에서도 가능하지만 보통 클래식을 플레이하는 유저는 내가 이런 상황에 진입했을 때 상대가 어느 경로로 움직일 경우 대공으로 반응해야지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야 비슷한 플레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모던에서 클래식으로 전환을 하게 된 것은 우선 모던이란 조작법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개성을 다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모던 플레이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위 단계에 가서 느껴지는 한계가 명확했단 점입니다. 모던은 캐릭터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캐릭터의 조작법이 동일하고 스킬과 기본기의 갯수도 동일하게 맞춰주는 편입니다. 그렇기에 특히 고우키와 같은 캐릭터는 모던으로 플레이하면 툴은 다 짤렸는데도 체력은 1000이나 깎여있는 모던계의 최약 캐릭터로 손꼽힙니다. 게다가 이번에 고우키의 밥줄로 불렸던 약용권 -> 앉강발에서 이어지는 안전 점프 셋업이 사라지면서 이에 대한 파훼법을 별도로 찾지 못한 저는 캐릭터를 변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모던으로는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의 종류가 한정적입니다. 물론 본인이 마스터 이상의 플레이를 목표하지 않는다면 문제되지 않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모던으로는 플레이할만한 캐릭터의 수가 한정적인 편입니다. 모던은 데미지가 약해졌기 때문에 그만큼 기회를 더 많이 잡아야하는데, 현실적으로 모던이 클래식보다 더 많은 기회를 잡는 것이 쉽지도 않은 것이 필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기본기들이 부재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캐미의 서약발, 고우키의 앉중손과 중단 등 수도 없이 많은 툴이 빠지고 모던이 기회를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전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싶은 시점에서 모던에 맞는 캐릭터가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적응을 위한 새로운 출발

적응을 시작하기 위해서 한 것은 우선 캐릭터, 그리고 컨트롤러를 바꾸는 일입니다. 동일한 캐릭터를 플레이하면 우선 티어가 너무 높고 원래대로면 이길만한 상대에게 진다는 것에 불쾌함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고, 동일한 컨트롤러(패드)를 사용할 경우 기존의 습관대로 조작하려 할텐데 가장 중요한 버튼 두개의 위치가 뒤바뀌어있거나(임팩트, 패리) 없는(잡기) 경우들이 존재해 헷갈리는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아예 새로운 캐릭터와 새로운 조작법으로 출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캐릭터는 저는 기본적으로 스탠다드 캐릭터를 좋아하는 편이고 비교적 류가 쉽고 강(한게 아니라 요즘엔 사기가 아닌가 싶은)하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컨트롤러는 알리에서 비교적 싼 힛박(레버리스)을 구매했습니다.

첫 힛박

레버와 힛박 중에 힛박을 선택한 것은 저는 레버로 게임을 플레이해본 적이 얼마 없기도 하고, 아무래도 튀어나온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을까한 것이 컸습니다. 또 레버리스를 사용할 경우에 각종 버튼의 조합으로 일반적인 것과 다른 방식으로 커맨드를 입력할 수 있다는 노하우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다이아3에 배치받았던 류를 클래식으로 처음 플레이하면서 플레까지 강등당했다가 다이아5까지 다시 올라오는 과정은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쓸 줄 아는 콤보라고는 가장 간단한 강승룡, sa3 콤보, 셋업도 강승룡 이후 셋업과 벽 상황에서 연잡 상황 밖에 없지만 그래도 게임을 한 짬바가 있는지 꾸역꾸역 하다보면 다이아 5에 도달은 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극복되지 않는 결점이 아무리 해도 대공이 나가질 않고 여기 점수대의 친구들과 비교해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는데 대공을 못쳐서 이길 방법이 안보인다는 데에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이 때부터 단순히 될때까지 수련하는 것을 떠나서 환경을 개선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지에 대해서 고민했고 다음의 방법을 적용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mirrored

좌우 반전 힛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좌우 반전 힛박은 특히 한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고 키보드를 기반으로 게임을 오래 해 온 유저인데다가 오른손잡이일 경우 오른손으로 방향의 정교함과 속도가 더 필요한 방향키를 쓰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이야기는 꽤 있어왔습니다. 좌우 반전 힛박을 사용하는 유명한 유저의 경우에는 drx leshar 선수가 있습니다. 물론 레샤 선수는 아예 키보드를 힛박으로 변경해놓기만 한 형태의 것을 사용하시기는 하지만요.

좌우 반전 힛박의 경험

‘조작기기를 바꿨으면 캐릭터도 바꿔야한다’가 제가 가지고 있는 기본 신조이고, 분명 굉장히 강력하지만 고우키에 비해 느릿해서 답답한 류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저에게 마음에 들지도 않았습니다. 류는 단순하게 플레이해도 강한 것은 맞지만 더 강해지려면 캐릭터의 포텐셜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루트의 콤보 수행도 할 필요가 있는데(특히 류의 경우에는 그 경향이 강하다 생각합니다) 그럴 의욕도 별로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테리로 캐릭터 전환을 했습니다.

좌우 반전 힛박을 사용하고 느낀 것은 확실히 좌우 반전을 해두고 보니 내가 얼마나 왼손으로 힘들게 게임하고 있었는지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손이 얼마나 빠르고 부드럽게 나가는지 한번 돌렸다 생각했 는데 두번 돌려서 sa가 나가는 당황스러운 경험도 많이 햇습니다. 그 때문에 이전에는 가지고 있던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던 버튼을 연타하던 것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입력이 잘 안나가니까 반복해서 입력하던 것인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그 덕분에 이전처럼 ‘아 나는 썼는데’라고 생각하지만 콤보가 안 나간 경우라든가, 분명 대공을 인식하고 승룡을 돌렸는데 다 돌리지 못해서 머리를 얻어맞든가하는 경험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어느 정도 새 컨트롤러에 적응했다고 느껴지고 플레이 숙련도가 올라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점수는 제자리에 다이아4 초반에서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신기한 것은 저는 커룸을 돌릴 때는 처음 게임해보신 분께도 본캐 다이아 아니죠?란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다이아보다는 뭔가 잘하지만 그렇다고 랭매를 돌릴 때에 마스터를 갈 정도의 실력이 되지는 않는 묘한 차이를 잡지 못하고 있단 사실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커룸에서와 랭매에서 다르게 플레이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생각하면서 플레이하라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최근에 스파6 과외를 받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어쩌다가 보게 된 유튜브 영상에서 너무도 간단하게 기본기 2개와 콤보 하나만 가지고 게임하겠다는 제약사항을 가지고 플레이를 내내 설명하면서 플레를 다는 스트리머를 보게 됐습니다. 이 플레이에 크게 충격받고 해당 스트리머에게 격투기의 기본이라는 주제로 지난주부터 과외를 받으며 제 문제는 필드전에서 얼마나 생각을 하느냐가 모자라단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리고 그게 커룸과 랭매에서의 차이기도 했습니다. 커룸에서는 생각하면서 하는데 랭매는 반사적으로 플레이해왔거든요.

생각해보면 애초에 제가 모던에서 한계를 느껴서 클래식으로 전향을 결심하게 된 계기 역시도 기본기 스펙 차이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껴서였는데, 정작 제가 그 기본기를 쓸 줄 몰랐다는 것은 개그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왜 사람들이 모던으로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그 점수대의 사람에 비해 필드전을 하는 법을 잘 모른다고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모던 유저는 동일한 상황에서 대응할 때에 기본기가 아니라 커맨드로 나가는 기술들을 기본기로 활용합니다. 그것이 점수가 낮을 때에는 훨씬 효과적이거든요.

내가 하는 모든 플레이들에 ‘왜’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부터 마스터에 안착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 습니다. 다이아4 0점에서 마스터에 도달하는데 몇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 같네요.

모던을 플레이할 것인가, 클래식을 플레이할 것인가

많은 논란이 있는 부분이고 저는 모던으로 아예 격투 게임에 입문해 클래식으로 전환을 한 입장에서 둘은 다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패드로 클래식을 플레이하는 외국인 선수들이 많다지만 저는 패드는 격투게임을 다루기에는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조작기기라고 생각하며 반면 모던으로 조작법을 선택할 경우 패드로 게임하는 것은 너무나도 편안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저 역시 이 게임 입문은 모던 패드로 했습니다.

모던으로 한다해서 이 게임의 재미를 못 느끼지도 않고 이 게임의 대부분의 유저는 모던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더 강력합니다. 플레 구간까지는 클래식 유저를 찾아보기도 힘들 뿐더러 해당 구간에 있는 클래식 유저는 올라가는 중인 것이 아닐 경우 모던 유저에게 손쉬운 상대입니다. 격투 게임의 가장 기초적인 재미는 상대를 부숴 이기는 것입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심리는 모던을 했을 때에 문법이 달라지는 부분은 있습니다만 근본적인 원리는 동일합니다.

다만 모던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단순한 조작 체계에 어울리는 모던 조작법은 단순한 조작이 어울리는 캐릭터인 루크 등을 제외하면 클래식으로 플레이하는 것에 비해 힘이 크게 빠지게 됩니다. 사용할 수 있는 콤보의 제약도 크고,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이 때문에 성능을 신경쓰면서 플레이한다면 비교적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도 좁아질 뿐더러, 플레이의 폭 역시도 좁아집니다.

원래부터 격투게임을 플레이하던 분이라면 클래식 조작을 포기할 이유는 없지만 신규 유저라면 모던으로 시작해 내가 격투 게임을 좋아하는 것이 맞다면 클래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할만한 이유는 그것들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더 깊게 즐길 수 있습니다. 제가 해 온 것처럼 나에게 맞는 컨트롤러가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여정이니까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분명 격투 게임 중에 잘나간다는 스파6를 경험해보기 위해 찍먹이나 해볼까하던 제가 어쩌다보니 플레이타임은 760시간에 마스터 캐릭터 둘, 모던 클래식을 다 쓸 줄 아는 악귀에 발을 걸치고 있는 상태가 됐습니다. 요즘에는 프로 경기들을 보는 것도 굉장히 즐기고 있네요. 격투 게임은 그런 의미에서 분명 사람들의 인식과는 다르게 스파6에 한정해서 만큼은 easy to play, hard to master의 형태를 갖추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뭐 마스터에 왔다 해봤자 매칭 돌리면서 바로 1300점대로 떨어지긴 했습니다만, 그럴거면 왜 고생해서 클래식으로 전환했냐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하나하나 새로 배우고 순수하게 상대와 동일한 조건에서 승부를 겨루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경험입니다. 격투 게임은 재밌네요.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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