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2년 전 5월에 퇴사를 하다
- 같이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 저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외로웠습니다
- 저는 이제 더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 앞으로 내가 새로운 회사에 기대하는 것
- 마무리
2년 전 5월에 퇴사를 하다
저는 2년 전인 2022년 5월, 졸업 후 1년 반에 걸친 구직 기간 끝에 취업에 성공한 회사를 1년 반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다닌 끝에 퇴사했습니다. 그 이유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불만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회식 문화가 과하다든가, 업무가 많아 퇴근을 못한다든가, 야근도 많은데 포괄임금제였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팀원 분들은 친절하셨고, 업무 강도도 약했던데다가, 급여는 만족스러웠고 그 밖에 각종 복지도 좋았던 꽤나 훌륭한 회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동기들 중에서 퇴사한 사람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회사를 다니는 시간이 너무 아쉽고 불행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어렵게 구했던 직장이고 이만한 곳에 다시 들어가기 힘들고 커리어에 손해가 될 것이란 사실을 알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그 원인이 회사의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약해 제가 원하는 성장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제가 그 때 그렇게 의욕 넘치게 배움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동시에 그것이 아니란 사실도 은연중에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된 이유를 모른 채, 제 첫 직장과의 인연은 찰나에 끝이 났습니다.
같이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최근에 본 유튜브 영상 중에 조승연 작가와 장동선 박사가 찍은 한국인이 왜 외로운지에 대해 뇌과학적으로, 그리고 인문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영상이 있었습니다. 해당 영상에서 말하는 외로움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제가 알고 있던 것과도 많이 달랐지만, 동시에 많은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외로움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혼자 있는 것, 사람이 없는 것, 사람들과 소통이 없는 것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한국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집에 있을 때 혼자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분명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행복해야 할 텐데, 정작 한국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해당 영상에서는 함께 있다는 것과 외롭지 않은 것이 동치가 아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이란 무엇일까요? 어떨 때 우리는 외롭다고 느끼는 걸까요? 무엇이 우리를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외롭게 만드는 걸까요? 이에 대한 정답으로 장동선 박사와 조승연 작가는 ‘외로움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할 때 느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 의식하고 자신을 꾸며내는 일을 집 밖에서도 하지만, 집 안에 들어와서도 계속해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집에서도 혼자 있게 돼서야 외롭지 않게 되고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 말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제가 여기에서 말하는 외로운 사람의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이었으며 제가 겪었던 감정들이 외로움이라 해석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외로웠습니다
2년 전의 저는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외로웠고, 심지어 제가 외롭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했어서 최악인 상태였습니다. 그 때의 저는 회사, 집, 외부, 그 어느 곳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 의식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어디에 있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웃고 떠들고 있었기 때문에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와 있을 때도 저 자신으로 있지 못했습니다.
앞의 영상에서 두 분은 진정한 자신으로 있는 것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한국은 시스템이 너무 잘 갖춰져 있어 많은 것들이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MBTI와 같이 너가 누구냐에 대해서도 단순히 16가지로 분류해놓고 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려고 하는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 것도 다른 사람의 행동이라는 복잡한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남들하고 다르니까 그걸 의식해서 남들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노력해야한다는 이야기를 집에서 많이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네가 남들하고 다른건 알지?’ ‘네가 언제까지 게임하고 만화 볼 것 같애? 다 나이 먹으면 그만할 건데 적당히 해라.’ ‘그렇게 게임할 거면 차라리 내가 돈을 줄 테니까 집을 나가서 살아’ 등등, 제가 집에서 들었던 말들은 제가 가진 개성을 부정하는 것들이었기에 저는 집에 있을 때 가장 외로웠고 문을 닫고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 괴롭다는 이야기를 할 상대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회사에서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역시 없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회사에서는 제가 가진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공유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회사 업무에 적응하고 성장하는 데에 있어서의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당장에 저에게 눈앞에 주어지는 업무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것이 제 이후의 커리어에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부족하다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회사에서도 외로웠고, 집에서도 외로웠습니다.
저는 이제 더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퇴사를 한 이후에 저는 이전의 저라면 만나지 않았을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제 인생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이자 축복 중 하나입니다. 주로 온라인을 통해서이긴 했습니다만, 예를 들면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를 같이 플레이했던 단톡방 멤버 분들처럼, 저와 마찬가지로 서브컬쳐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 같이 제가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관심사를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지난 2년간은 외롭지 않고 너무나 행복한 나날들이었습니다.
또한 제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업으로 일하는 친구나 우연히 만난 온라인 상에서의 만남, 함께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구직을 하면서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서 내가 가진 고민들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밖에 책을 읽는 시간을 통해서도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이전보다는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가진 다양한 고민들과 성향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시간을 통해 저는 더 이상 외로운 사람이 아니게 됐습니다.
앞으로 내가 새로운 회사에 기대하는 것
너무 무리인 바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새로운 회사에 가서는 이전의 저처럼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로의 고민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는 믿음직한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사의 동료는 저의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대해 같이 공감하고 들어줬을 때 가장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업무적으로 힘들거나 고민이 되는 순간에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면 가장 든든한 원군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제는 제게도 밖에서 돌아오면 저를 그대로 받아주고 고민을 들어주는 따뜻한 공간이 생겼지만, 회사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시간의 비중을 생각하면 회사에서 외롭지 않은 것이 제 인생이 얼마나 외롭지 않았느냐를 결정하는 데에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저부터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는 사람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외롭지만 외롭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제 덕분에 외롭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무리
외로움은 건강에 엄청나게 안 좋다는 결과들이 속속들이 나오는 중입니다. 극단적으로는 외로움이 매일 담배를 15개피 피는 것 만큼이나 건강에 치명적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나라라는 것은 우리 주변 사람들이 사실 알아채지 못했지만 많이들 아프고 괴로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2년 전의 제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모두에게 진정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안식처가 하나 쯤은 있기를, 그리고 없다면 생겨나는 축복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