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는가

최근 여러모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 입니다. 그 생각들을 무엇이냐라고 정의하라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한다면 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봤을 때 저는 그것이 ‘내가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소설 <피를 마시는 새>에서 사라말은 인간의 인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산다는 것은 계통 학적으로 볼 때 음식의 하위에 있고 분변의 상위에 있습니다. 음식과 분변 사이에 있는 나는 끊임 없이 음식을 모아 나를 만들고, 나를 다시 분변으로 바꿉니다. 그것은 올라가도 내려가서도 안되며 필사적으로 중간의 위치를 지켜야하는, 땔깜과 재 사이에 있는 불과 마찬가지의 것으로 그것이 산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입을 빌어 말하자면 삶이란 것은 결국 음식과 분변 사이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사랑이나 학문과 같은 부산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물론 얼마나 색깔이 예쁜 똥이 나오느냐를 가지고 삶을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분변이 아니더라도 그 중간의 무언가들 또한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아무래도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내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단 한가지 요소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결국 나를 구성하게 될 음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리사가 음식을 맛있게 빚어내기 위해서 우선은 재료가 신선한 것이어야만 하듯, 인생 역시도 우선은 먹는 음식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면 만족스러운 형태로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결국 그 사람과 식사를 함께하는 순간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에,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의 일부를 내어주고 만드는 과정에 참여시킨다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 인생의 불꽃을 예쁘기 지펴 올리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과 함께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다면 저는 어떤 사람과 밥을 먹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만남은 기적이다

불만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고 싶은가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

참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털어놓고 눈 앞의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


202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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