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랑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나는 여느 날의 일요일처럼 누워서 유튜브와 애니메이션 영상을 보면서 꼬박꼬박 졸면서 오전을 보내다가, 좀 생산적인걸 할까!라며 스파6 랭겜을 돌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어제는 친구분들과 애니메이션 상영회를 친구분 집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웃으며 즐겼다. 중간에 비는 시간에는 시장에서 먹을것도 사오고, 동키콩도 플레이했다. 어제와 오늘은 그런,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 없었던,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사랑이는 우리 집에 입양돼 들어온 포메라니안 믹스견이었다. 유기견이나 펫숍이 아닌 집에서 태어난 친구를 입양받았던 덕이었을까, 사실 다른 애완 동물을 길러본 적은 없으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저 내 상상속의 이야기일 뿐 나머지 애들은 어떤지 모른다. 다만 우리 집의 사랑이는 참 말썽도 많이 피우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사람은 좋아하고 산책 나가고 싶어하면서도 나가서는 얼마 걷지도 못해 안아달라 하면서, 만나는 개마다 짖어대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게 만드는 민폐덩어리였다.
솔직히 나는 사랑이를 산책 데리고 나가는 것이 귀찮았다. 나가기만 하면 어디서 끌어모은 것인지 모를 똥은 낑낑대며 억지로라도 싸놓기에 배변봉투는 항상 챙겨다녀서 치워야했고, 쬐끄만 것이 산만한 대형견들에게 짖기는 어찌나 짖어대는지 조마조마하기 일쑤였다.
입맛도 엄청 까다롭고 고급인 친구였다. 싼 값의 개밥이나 사람이 먹어보다가 당도가 아쉽다 싶었던 사과 같은 것들을 소위 짬처리 시켜보려고 하면 조금 씹어보고는 배가 곯아서 쓰러질 것 같을 때가 아니면 입에 넣지를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먹는 음식은 엄청나게 탐내던 아이였다. 사람이 밥먹으면 옆에 앉아 꼬리 흔들며 뭔가 얻어낼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고, 우리가 먹은 음식을 치우는 것을 실수로 상에 놔두고 가면 양념 치킨을 뼈조각까지 씹어먹거나, 쓰레기통을 뒤져서 우리 간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분명 강아지는 초콜릿, 포도 이런 것 먹으면 죽는다고 몰래 먹은 것을 알았을 때 여동생은 사랑이가 죽겠다며 울었다. 그냥 멀쩡하게 하루 좀 낑낑대더니 똥싸고 다음날부터 먹을거 달라고 졸라대는 멍청한 똥개였다.
그렇게 키우던 사랑이를 집에서 키우기 힘든 상황이 왔다. 가세가 기울어 조그만 집으로 이사를 가야했는데, 그 집에서 애완견을 키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키우고자 했다면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때 첫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였고 외삼촌의 집으로 파양보낸다는 말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사랑이는 외삼촌의 집에서, 우리 집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먹을 것도 잘 먹고 산책도 시켜주는 그런 집으로 보내졌다.
그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는 분명 그렇게 살 수 있는 날이 그렇게 오래 남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과연 사랑이가 죽었을 때 나는 눈물 흘리며 슬퍼할까. 귀찮은 짐덩어리를 하나 내려놨는데 잘 갔네라는 생각을 할까. 아마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그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도 아니고 어제 사랑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고 마치 먼 친척 혹은 뉴스에서 전달받은 듯한 공허하고 싱숭생숭한 기분만이 들었다.
그런데 또 왜 이렇게 게임은 잘 되는 것인지. 스파 랭매 돌리는데 점수는 100점이나 올랐다. 9연승도 했다. 100점을 딱 올린 김에 머리를 자르러 집을 나섰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치밀어오르는 슬픔에 눈물이 흘렀다.
나는 사랑이가 죽었다는 사실이 진짜 슬픈 것일까, 나는 슬퍼해도 될 자격이 있는걸까 아니면 이런 감성넘치는 내 자신이라는 페르소나에 취한걸까. 그렇게 슬프지 않다는 사실에 슬프다는 나는 무엇이고 집을 나서자마자 왈칵 눈물흘리는 나는 어떤 사람인걸까
사랑이는 병원에서 죽었고, 시체에 대한 처리도 병원에 전부 맡겨 유해를 가지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도 잃었다. 잘 모르겠지만 나는 슬픈 것 같고, 사랑이는 이제 없으니 그저 살았던 생이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았고 행복한 점이 있었기를, 죽기 직전에 많이 아프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동안 고마웠다.